01. 행복과 불행

이 세상에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따스한 체온을 즐기기 위해서는 어딘가 추운 데가 있어야 한다.
비교할 대상이 없이는 그 진미을 맛볼 수 없는 법이다.

만일 지난 날 오랫동안 행복했노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제 더 이상 행복하지 않게 되었다는 의미에 다름 아니다.


02. 인생은 끝이 없는 항해

우리는 배에 올랐다. 돛을 올리고 배는 강을 따라서 내려갔다.
강의 어귀에는 마을이 솟아 있고, 얼음을 뒤집어쓴 나무들이 차갑고 맑게 갠 하늘에 빛나고 있었다.
선창가에는 둥근 통들이 산처럼 쌓여 있고,
전세계를 떠돌아다니다 돌아온 포경선들이
소리도 없이 떼를 지어 편안하게 쉬고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통장이들의 통 만드는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왔다.
새로운 항해가 시작되고 있음을 알려주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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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그토록 위험한 원양 항해가 한번 끝났다는 것은 곧 두번째의 시작을 의미한다.
그리고 두번째가 끝나면 다시 세번째가 시작되고...
이렇게 해서 다음에서 다음으로 그것은 영원히 이어지는 것이다.

이것은 끝이 없다. 아니,
세상사라는 것 자체가 어쩌면 이렇듯 (끝이 없고 그래서) 견디기 힘든 것인지도 모른다.


03. 위대함

비극적으로 위대한 모든 인물은 그들 특유의 어떤 병적인 개성과 운명을 소유하고 있다.
 
큰 뜻을 품고 있는 젊은이들이여!
모든 인간의 위대함이란 병에 지나지 않는 것임을 명심하라!


04. 진정한 용기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진 사람이란
위험에 직면해서 그 위험을 공정하게 인식할 수 있는 사람이며,
무서움을 모르는 자는 겁장이보다 더 위험한 인간이다.

용기란 단순하게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감정적인 것이 아니며,
무엇인가 물러설 수 없는 환경에 처했을 때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구이다.
때문에 그것은 아무 때나 쓸모없이 남용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05. 동료의 결함

인간이란 누구나 야비하고 나약한 면을 가진 존재인지 모른다.
이상을 품고 있는 인간은 참으로 숭고하고 찬란하며 장대하고 현란한 존재다.
이런 사람에게 약간의 수치스러운 결함이 드러나는 경우,
동료라면 아무리 값비싼 옷을 입고 있더라도 그것을 기꺼이 벗어 결함을 덮어주어야 한다


06. 모욕

손으로 한번 얻어맞는 것은 매로 오십 번을 얻어맞는 것보다 더 화가 치미는 법이다.
모욕이란 살아있는 것들이 일으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07. 카인이 아벨을 죽인 곳

자, 링은 만들어졌다. 이 세상이 바로 링인 것이다.
카인이 아벨을 죽인 곳도 바로 이 세상의 한복판이었다.

멋진 얘기다. (싸운다는 것은) 얼마나 훌륭한 일인가?
아니라고?
그렇다면 신은 어째서 세상에 링을 만들게 했단 말인가?


08. 프로메테우스

스스로의 치열한 의식에서 스스로 프로메테우스가 된 인간,
그대의 심장은 영원히 독수리의 먹이가 되었고,
그 독수리야말로 바로 그대가 만들어낸 창조물이다.


09. 죽음

우리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서 아주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 지구상에서 소위 그림자라고 불리는 것이야말로 우리의 참다운 모습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영적인 것을 생각하는 것은
마치 굴조개가 바다 밑에서 태양을 쳐다보며
흙탕물을 가장 맑은 공기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일지도 모른다.

내 육체는 나의 보다 훌륭한 부분의 찌꺼기인지도 모른다.
내 육체를 누군가가 가져가고 싶다면 마음대로 가져가도 좋다...
그러나 내 영혼을 산산조각 내는 일은 주피터 신으로서도 할 수 없을 것이다.


10. 양심

양심은 상처와 같은 것이며,
이 상처의 출혈을 멈추게 하는 방법이란 이 세상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11. 종교

나는 모든 사람들의 종교적인 의무에 대해서는
비록 그것이 아무리 우스꽝스러운 짓이더라도 최대의 존경심을 가지고 대하는 성품이다.
예컨대 개미떼들이 독버섯에 대해서 숭배를 한다고 해도 이를 경멸하지 않는다.

또 이 지구상의 어느 곳에서 어떤 사람들이
다른 별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비굴한 노예 근성을 가지고,
어떤 지주에게서 농토를 소작으로 빌려 경작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그 지주가 죽은 다음 그 지주의 흉상 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한다고 해도
나는 그것이 비굴한 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12. 심판

지금 당장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생각해 봐.
그런데도 그때 죽음과 심판을 생각하라고?
돛대 세 개가 뱃전에 마구 부딪치면서 연방 우뢰와 같은 소리를 내고 있는데,
그리고 파도가 앞뒤로 머리 위를 넘나드는 판에, 뭐?

죽음과 심판을 생각하라고?

아니, 나는 그때 죽음을 생각할 여유도 없었어.
오직 살아야겠다는 생각 뿐이었어.
에이헤브 선장이나 나나 모두가 어떻게 하면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제일 가까운 항구에 닿을 수 있을까?
오직 그것만을 생각하고 있었단 말이야.


13. 교훈

번뇌하기보다 명성을 추구하는 자에게는 화가 따른다.
선 그 자체보다 선이라는 이름을 더 바라는 자에게는 화가 따른다.
이 세상에서 치욕을 감수할 용기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따른다.
구제를 받을 수 있음에도 진실을 말할 용기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따른다.

다른 사람에게 설교를 하면서도 그 자신은 무뢰한인 자,
그에게도 화가 따를 것이다.


14. 어느 포경선원을 위한 비문







문득. 다시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가 생각난다.

<덧붙이는글> 얼마 전에 아들한테 모비 딕을 사줬다. 오늘 물어보니 다 봤댄다. 기특하다. 맨날 만화만 그리고 해서 책읽기는 아예 포기하고 지내는 줄 알았는데 그걸 그새 다 읽다니. 다른 걸로 하나 더 사주까 했더니, 노~란다.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그래도 이번 일 끝나고 나면 서점에 가서 하나 더 사줘봐야지.. ^^   _ 2008. 12. 03.  0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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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Favicon of http://moohan83.com BlogIcon moohan 2009.02.16 13:5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다른 사람에게 설교를 하면서도 그 자신은 무뢰한인 자,
    그에게도 화가 따를 것이다.

    요즘 블로고스피어를 달구는 분들의 방명록마다 하나씩 달아주고 싶은 글입니다.
    잘 읽고 갑니다.

  2. Favicon of http://nirvanana.com BlogIcon 너바나나 2009.02.17 16:0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양심은 상처와 같은 것이며,
    이 상처의 출혈을 멈추게 하는 방법이란 이 세상에서는 찾을 수가 없다.

    캬~ 멋지구만요. 역시 고전이라 불리우는 것엔 이유가 있는 법인가!

    • Favicon of http://blog.mintong.org BlogIcon 하민혁 2009.02.17 17:53  댓글주소  수정/삭제

      그건 아닌 것같은디요. ^^

      저 친구가 살던 세상은 잘 모르겠지만, 이 세상에는 저 출혈 멈추게 하는 약이 널리고 널렸답니다. 들리는 소문으로는 그 중에서도 '돈'과 '이데올로기'라는 약은 그야말로 직발이라고 하더군요.

      그런 의미에서 보건대, 너바나나님은 천상 고전의 시대에나 어울리는 분이겠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순 '구닥다리'라는 얘기입지요. 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