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월요일 새벽 열차로 시골에 내려왔습니다. 벌써 일주일이 지났네요. 함께 온 아이들은 지난 목요일에 상경을 했지만 저는 아직도 시골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설날 노모를 뵙기 위해서라는 건 어쩌면 핑계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맞습니다. 확실히 지쳐 있었습니다. 2009년 벽두부터 모종의 일이 생겼고 급기야 가지고 있던 도메인을 모두 처분해야 했습니다. 그동안 수 백개의 도메인을 넘기면서도 10여년을 애써 지켜온 것들이기에 안타까움이 컸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견디기 힘들었던 것은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안 되도록 내몰린 저간의 상황이었습니다. 아름답지 않은.


시골시골길, 잃어버린 시간 속으로



갑작스레 예정에 없던 새벽 열차를 예매하여 십 수년 만의 명절 시골행을 결정한 것은 그러니까 그래서였을 겁니다. 쉬고 싶다는. 그리고 이것은 이제 내가 그만큼 나이를 많이 먹었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습니다. 일종의 도피를 한 셈이니까요. 젊었을 때라면 아마 정면으로 부닥치는 길을 택했을 터입니다.

저 위에 있는 사진은 아이들과 함께 걸어본 '국민학생' 시절의 학교 가는 길입니다. 버스가 다니는 큰 길이 따로 있었지만 우리는 늘 저 샛길을 이용하여 학교를 가곤 했습니다. 놀기에 그만이었으니까요. 암튼, 학교를 졸업한 이후로는 처음으로 가본 길이었습니다. 낯익은 만큼이나 낯선.

언덕배기에 있는 당산 나무도 예전의 그 나무가 아니었습니다. 겨울에 봐서인지 아니면 내 맘이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잔가지는 모두 부러지고 이파리마저도 도무지 쇠한 것이 울울창창한 기상으로 그 아래 우리를 감싸 안으며 뛰어놀게 하던 그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많이 늙어보였습니다. 마치 이룬 것 하나 없이 나이만 먹어버린 나를 보는 듯했습니다.

집도 더 이상은 예의 우리집은 아니었습니다. 우선 내가 쓰던 방부터가 이제는 내 방이 아니었습니다. 시골 생활을 시작한 사촌 동생이 사용하고 있더군요. 그래서 아이들과는 형님 내외(는 올해도 고향을 찾지 못했습니다)가 쓰던 방을 써야 했습니다. 다른 이가 방을 쓰게 되었다는 얘기는 전해 듣고 있었지만 막상 다른 사람의 공간이 되어 있는 방을 보게 되니 기분이 이상했습니다. 그 안에서 살아있던 많은 추억들이 모두 빠져나가버린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사라지는 추억들사라지는 혹은 돋아나는 기억들, 아름다운



내려온 지 일주일만인 오늘 제 방에 있던 짐을 옮겨둔 문간방으로 가봤습니다. 그동안 필요한 책은 몇 번 전해받았지만 내려온 이후로는 별로 내키지가 않아 가보질 않았댔는데 날씨가 너무 좋아 산책을 나가기도 민망하고 해서 방문을 열었습니다. 아름다웠습니다.

저 모습이 기억납니다. 제대를 하고 집을 찾았을 때의 방 풍경도 지금 저 모습과 비슷했습니다. 군에 있을 당시 시골 집에 굉장한 물난리가 났는데 그때 방이 침수되는 바람에 방에 있던 짐을 모두 옮겼고 그래서 제대했을 때는 대강 저런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물을 머금은 책들은 거의가 새까맣게 썩어 있거나 말라 비틀어져 있었고 그나마 성하다싶은 것들도 새앙쥐들이 갉아먹어 그 가장자리가 온통 너덜해져 있었지요.

별로 아름다워 보이지 않는 방안 풍경을 보고 아름답다 말하는 까닭입니다. 그 기억이 아름답거나 추하거나를 떠나, 때론 아픈 기억마저도 아름답게 만드는 게 추억이 갖는 힘이 아닌가싶어서요. 에니웨이,

연초에 아름답지 않은 일이 생기면 흔히 액땜한 셈 치라고들 합니다. 새삼스럽게 저 말이 무척이나 가슴에 와닿습니다. 그 정도로 어딘가에 기대고싶다는 얘기일 수도 있고 그만큼 절박하다는 의미이기도 하겠습니다. 어쨌든 그렇게 여기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다른 한편 그렇게 셈 친다고 해서 딱히 손해날 것도 없지 싶어서입니다. <통신보안>




<덧붙이는글> 시골이 아니라면 쓸 수 없는 글이 아닌가싶군요. 시골 만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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