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문화는 어떤 행태로든 기술과 협상을 벌일 수밖에 없다. 그 협상이 현명한 것이든 그렇지 않는 간에 그러하다. 기술이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과 우리로부터 빼앗아가는 것을 놓고 일정한 거래가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현명한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극적인 기술적 변화에 쉽게 현혹되지 않으며 쉬이 흥분하지도 않는다.

프로이트 역시 이 점을 잘 인식하고 있었다. 그의 우울한 저서 '문명속의 불만'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혹자는 다음과 같은 의문을 가질 수 있다. 그토록 듣고 싶어하던 수백 마일 밖에 있는 내 아이의 반가운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 그리고 친구가 얼고 험한 여행을 무사히 마쳤다는 반가운 소식을 금방 전해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아무런 기쁨도 주지 않는다는 말인가? 의학의 발달이 유아 사망률을 극적으로 줄인 것과 여성을 산욕열의 위험으로부터 구해낸 것, 그리고 심지어 문명인들의 평균수명이 눈에 띄게 증가한 것 모두가 무의미한 일이라는 말인가?"

 

프로이트는 기술과 과학의 진보를 결코 가벼이 여길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으며, 이 때문에 그 혜택을 언급하면서 자신의 글을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는 기술과 과학이 빼앗아간 것을 상기시키면서 글을 끝맺고 있다.

 

"애초에 거리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철도가 없었다면 내 아이는 고향을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나는 그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전화를 사용할 일도 없을 것이다. 만일 대양을 횡단하는 선박이 등장하지 않았더라면 친구는 항해에 나서지도 않았을 것이고 자연히 마음 졸이며 그의 소식을 전해들을 필요도 없을 것이다.

유아 사망률의 감소가 그 비율만큼 출산을 억제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그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결국 어떤 의미에서 보더라도 위생학이 발전하기 이전보다 우리가 아기를 더 잘 기른다고 볼 수 없으며, 성생활 여건 또한 악화되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구나 우리의 삶이 고통스럽고 기쁨이 없으며 비천하기 그지없어 오직 죽음만을 바라고 산다면 오래 산다는 것이 과연 무슨 의미를 갖겠는가?"

 

<테크노 폴리>, 닐 포스트먼 pp.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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